중첩의 원리가 무너지는 자리
자본흐름을 등가회로로 만들면 무엇이 재현되고 무엇이 끝내 재현되지 않는가 — 전자기학(회로망) × 금융경제학(가격형성) × 수치해석(적분 안정성)
’중첩’은 이 글에서 두 번 쓰인다. 하나는 전자기학과 경제학이 겹치는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회로망이 따르는 중첩의 원리(superposition)다. 자본흐름을 \(RLC\) 등가회로로 옮기면 감쇠와 두 유역의 결합은 정확히 재현된다. 그러나 시장의 다중프랙탈 간헐성은 어떤 안정한 회로 구성으로도 재현되지 않았다. 이유는 회로가 틀려서가 아니라 회로가 옳기 때문이다. 중첩의 원리가 성립하는 계는 스케일을 가로지르는 곱셈적 캐스케이드를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이 글은 그 결론에 이르기 전에, 재현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결과가 적분 스텝을 덜 준 산물이었음을 먼저 기록한다.
1 왜 회로인가 — 유추가 아니라 같은 방정식이다
유체와 회로가 닮았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둘은 같은 2차 미분방정식을 푼다.
\[L\ddot q + R\dot q + \frac{q}{C} = V(t)\]
여기에 시장을 넣으면 각 항이 관측 가능한 양이 된다. 전류 \(I=\dot q\)는 수익률, 축적된 전하 \(q\)는 로그가격, 저항 \(R\)은 실현변동성, 인덕턴스 \(L\)은 모멘텀, 커패시턴스 \(C\)는 밸류에이션 복원력, 전원 \(V(t)\)는 외생 수급이다.
이 대응에서 레이놀즈 수는 품질계수 \(Q=\omega_0 L/R\)와 같은 자리에 놓인다. 유체역학에서 \(Re\)가 관성 대 점성의 비였듯, 회로에서 \(Q\)는 저장 대 소산의 비다.
2 재현된 것 — 감쇠와 결합
두 가지는 회로가 정확히 잡아낸다.
첫째, 시장은 세 국면 모두 과감쇠(overdamped)다. 감쇠비 \(\zeta_d = R/(2\sqrt{L/C})\)를 관측 변동성으로 계산하면 상승기 1.66, 급락기 3.93, 정체기 4.12다. \(\zeta_d>1\)이면 진동조차 하지 못하고 지수적으로 죽는다. 폭락은 계가 더 과감쇠로 밀린 사건이다. 소용돌이가 커진 것이 아니라 유체가 걸쭉해진 것이다.
둘째, 음의 상호 인덕턴스가 통화 결합을 설명한다. 원화 자산과 달러 자산을 두 유역으로 놓고 상호 인덕턴스 \(M\)으로 묶으면, \(M=-0.30\)에서 두 전류의 상관이 \(-0.550\)이 된다. 실측된 주가–환율 상관은 국면별로 \(-0.401 \sim -0.534\)다.
3 재현되지 않은 것 — 간헐성
시장 수익률은 단일 스케일 과정이 아니다. 구조함수 \(S_q(\tau)=\langle|\Delta_\tau \log P|^q\rangle \sim \tau^{\zeta(q)}\)에서 \(\zeta(q)\)가 \(q\)에 선형이면 단일프랙탈, 오목하면 다중프랙탈이다. KOSPI 실측은 뚜렷이 오목하다. 선형이라면 \(\zeta(6)=6\zeta(1)=3.21\)이어야 하는데 실측은 2.010이다.
간헐성을 \(\zeta(6)-6\zeta(1)\)로 재면 실측은 −1.200이다.
여기서 첫 가설을 세웠다. 저항이 전류에 의존하면(즉 비선형 소자를 넣으면) 간헐성이 생길 것이다. 변동성이 커질수록 마찰이 커지는 시장의 성질을 \(R=R_0+\alpha|I|\)로 옮긴 것이다.
기각되었다.
선형 RLC는 −0.01, 비선형 소자를 넣어도 +0.01이다. 소자를 비선형으로 바꾸는 것으로는 간헐성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순간적 비선형성은 진폭을 조절할 뿐, 스케일을 가로지르는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
4 실패보다 먼저 기록해야 할 것 — 수치가 만든 신기루
두 번째 가설은 회로의 위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공진주파수를 2배씩 기하급수로 배치한 \(K\)단 사다리를 만들면 스케일이 여러 개 생기므로 캐스케이드가 나오리라 보았다.
처음 계산에서는 성공한 듯 보였다. \(K=1\)에서 +0.28, \(K=3\)에서 −0.50, \(K=6\)에서 −2.09. 단수를 늘릴수록 간헐성이 커지는 깨끗한 단조 관계였고, 실측 −1.200을 사이에 두고 지나갔다.
틀렸다. 고주파 단에서 적분 스텝이 부족했을 뿐이다. 최고 주파수 \(\omega_{max}\)와 스텝 \(h\)의 곱이 0.06 수준이면 그 단은 경계적으로 불안정해지고, 발산 직전의 진동이 두꺼운 꼬리처럼 보인다. \(\omega_{max}h \le 0.02\)를 강제하고 시드 24개로 표준오차를 붙이자 결과가 뒤집혔다.
\(K=4\)가 −1.157로 실측에 가깝지만, 바로 옆 \(K=5\)가 +0.042다. 인접한 단수에서 부호가 갈리는 값은 메커니즘이 아니라 표본의 우연이다.
5 경계에서 나오는 명제 — 중첩의 원리
왜 실패했는가. 회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회로가 정확히 회로이기 때문이다.
회로망 이론의 첫 정리는 중첩의 원리다. 선형 소자로 이루어진 망에서 여러 전원의 응답은 각 전원의 응답을 더한 것과 같다. 사다리를 몇 단 쌓든, 각 단의 전류는 합산될 뿐 서로를 곱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중프랙탈은 정의상 곱셈적 구조다. 큰 스케일의 변동이 작은 스케일의 변동 크기 자체를 조절해야 \(\zeta(q)\)가 휜다. 덧셈적 결합은 아무리 많이 쌓아도 유효 분산을 바꿀 뿐 스케일 간 의존을 만들지 못한다.
전기공학은 “비선형성은 소자에서 온다”고 가르친다. 이 분석은 그 명제를 시장에 적용하려다 실패했고, 실패의 방식이 답을 준다. 시장의 간헐성은 소자의 비선형성에서도, 회로의 위상에서도 오지 않는다. 중첩의 원리를 따르는 계에서는 원리적으로 나올 수 없다. 회로 유추가 성립하는 정확한 경계가 여기다 — 감쇠와 결합까지는 회로이고, 스케일 간 곱셈이 시작되는 자리부터는 회로가 아니다.
이 저널은 앞서 SP11 시장 임피던스에서 회로 언어의 전달함수 쪽을 다뤘다. 대역별 이득은 선형 응답의 문제이고, 중첩의 원리가 성립하는 영역이다. 이 글이 다룬 것은 그 영역이 끝나는 자리다.
그리고 SP21 정치의 복원력과는 정확히 짝을 이룬다. 정치체제는 단일 진동자의 복원력 \(-kx\)로 설명되었다. 시장은 단일 진동자로도, 진동자를 여러 개 엮어도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2차계 언어가 한쪽에서는 충분하고 다른 쪽에서는 원리적으로 부족하다.
6 그래서 무엇이 남는가
회로 모델은 폐기 대상이 아니다. 적용 범위가 확정된 것이다.
| 대상 | 회로가 재현하는가 | 근거 |
|---|---|---|
| 국면별 감쇠 거동 | 재현 | 감쇠비 1.66 → 3.93 → 4.12, 세 국면 과감쇠 |
| 두 유역(원화·달러)의 결합 | 재현 | M=−0.30에서 corr −0.550, 실측 −0.401~−0.534 |
| 단일 스케일 변동 | 재현 | 선형 RLC의 ζ(q)가 정확히 직선 |
| 다중프랙탈 간헐성 | 재현 불가 | 안정 구성 전부에서 0 부근, 실측 −1.200 |
간헐성을 담으려면 회로가 아니라 곱셈적 캐스케이드 모형이 필요하다. 다중프랙탈 랜덤워크가 그 계열이며, 이는 회로 방정식과 다른 대상이다.
반대 해석 1 — 회로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내 회로가 부족했을 수 있다. 여기서 시험한 것은 선형 소자·전류의존 저항·확률적 저항·기하급수 사다리 네 가지다. 비선형 커패시턴스, 능동 소자, 지연 되먹임을 넣은 구성은 시험하지 않았다. “회로로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중첩의 원리를 따르는 수동 선형망에 한정된다. 능동 소자가 들어가면 중첩은 깨지고 결론도 달라질 수 있다.
이 반대 해석은 발행 당일 부분적으로 검증되었다(7절 참조).
반대 해석 2 — \(K=4\)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표준오차 0.368로 −1.157이며 실측 −1.200과 겹친다. 인접 단수와의 불일치를 근거로 우연이라 판정했으나, 시드를 수백 개로 늘리면 다른 그림이 나올 여지가 있다. 현재 판정은 24개 시드에 근거한 잠정이다.
한계. 실측 표본은 2025-06-04 ~ 2026-09-09의 310거래일 하나이며, 급락·정체 국면은 각 27~28일에 불과하다. 감쇠비 계산은 \(\omega_0=0.10\)이라는 임의 선택에 의존하므로 절대값이 아니라 국면 간 비율만 해석해야 한다. 시뮬레이션은 예측이 아니며, 어떤 결과도 매매에 적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글 자체가 한 번 틀렸다. 사다리가 간헐성을 재현한다는 결과를 먼저 얻었고 기록에 남겼다. 적분 해상도를 올리자 사라졌다. 수치 실험에서 “그럴듯한 결과”는 수렴을 확인하기 전까지 결과가 아니다.
7 후속 검정 — 빠진 항은 이류(advection)였다
발행 직후, 반대 해석 1을 직접 시험했다. 유체와 회로의 방정식을 항 단위로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하나로 좁혀진다.
| 관성 | 소산 | 복원 | 이류 \((u\cdot\nabla)u\) | 강제 | |
|---|---|---|---|---|---|
| 유체 | \(\partial_t u\) | \(\nu\nabla^2 u\) | \(-\rho^{-1}\nabla p\) | 있음 | \(f\) |
| 회로 | \(L\ddot q\) | \(R\dot q\) | \(q/C\) | 없음 | \(V(t)\) |
| 시장 | 모멘텀 | 변동성 마찰 | 밸류에이션 회귀 | 군집·자기수송 | 수급 |
회로에 이류항이 없다는 사실이 곧 중첩의 원리가 성립하는 이유다. 흐름이 자기 자신을 실어 나르지 않으므로 전류는 더해질 뿐 곱해지지 않는다.
검정 1 — 집중정수 회로에 \(\beta I\dot I\) 추가. \(\beta\)를 0에서 120까지 올려도 간헐성은 −0.024에서 −0.131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집중정수에는 공간이 없어 공간 기울기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정 2 — 32노드 전송선에 이웃 간 이류 결합 추가. 공간을 넣자 결과가 달라졌다.
| \(\beta\) | 0 | 8 | 45 | 90 | 180 | 700 | 실측 |
|---|---|---|---|---|---|---|---|
| 간헐성 | +0.143 | −0.078 | −0.245 | −0.303 | −0.186 | −0.120 | −1.200 |
| ±SE | 0.121 | 0.029 | 0.030 | 0.026 | 0.028 | 0.021 | — |
간헐성이 실제로 발생하며 표준오차 ±0.03으로 0을 배제한다. 사다리에서 얻었던 신기루와 달리 이번 효과는 견고하다. 다만 \(\beta\approx 90\)에서 포화하고 실측의 약 25%에 그친다.
부족분의 후보 설명은 차원이다. 이 전송선은 1차원이고, 3차원 난류의 직접 캐스케이드를 만드는 와도 신장 항이 1차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2·3차원 격자 검정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본문의 경계 명제는 유지되되 좁혀진다. 중첩의 원리를 따르는 수동 선형망은 캐스케이드를 만들 수 없다. 그것을 깨는 항은 소자의 비선형성도 회로의 위상도 아니라 공간을 가로지르는 자기수송이다. 그리고 그 항만으로는 관측의 4분의 1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8 참고 문헌
- 분석 코드와 전 과정 재현:
waterfirst/ns-capital-flow·analysis/(circuit_model.py,circuit_ladder.py,ladder_sweep.py,currency_flow.py,turbulence_test.py) - S. Ghashghaie, W. Breymann, J. Peinke, P. Talkner, Y. Dodge, Turbulent cascades in foreign exchange markets, Nature 381, 767–770 (1996)
- A. N. Kolmogorov, 국소 등방성 난류의 스케일링 법칙 (1941)
- E. Bacry, J. Delour, J. F. Muzy, Multifractal random walk, Phys. Rev. E 64 (2001)
- Insight Lab SP21 — 정치의 복원력과 진동방정식
- 시장 데이터: Yahoo Finance (
^KS11,KRW=X, 국내 섹터 ETF 10종), 2025-06-04 ~ 2026-09-09